조선일보 장애인용 구두 匠人 남궁정부 2010. 5. 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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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그 사람 그 후] 장애인용 구두 匠人 남궁정부
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조선일보 입력 : 2010.05.14 16:18



왼팔로 만든 '따뜻한 신발' 신고… 장애인 5만명이 웃었다
지난달 20일 구두 장인(匠人) 남궁정부(69)가 국민포장을 받았다. 장애인복지증진에 기 여한 공로다. 그는 장애인용 구두를 만든다. 그가 만든 신발로 걸어다니게 된 장애인 이 5만 명이 넘는다.

2008년 1월 그 스토리가 조선닷컴에 보도됐다. 남궁정부는 오른팔이 없는 장애인이다. 2년 만에 다시 그에게 연락해보니 "여전히 소주 잘 먹고 기부도 하고 산다"고 했다. 그는 작년부터 매달 10만원을 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목발 짚고 온몸 출렁이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걸어 다니는 사람만큼 서글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멀쩡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있음에도 외형이 그러하다는 이유만으로 냉대를 받으며 그들은 살고 있다.

남궁정부도 그 중 한명이다. 장애인이 되기 전 그는 구두장이였다. 수제화가 인기 끌던 1970, 80년대에 웃돈 받아가며 스카우트되던 장인이었다. 1990년대 들어 수제화의 시대가 가자 그는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곤궁해졌다.

1995년 11월 그날도 옛 동료들과 세상을 취중작파하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이었다. 플랫폼 가득 들어찬 인파에 밀려 쇠락한 구두장이가 선로로 떨어졌다.

요란한 굉음과 불빛을 던지며 달려오는 전동차를 보며 그는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죽지는 않았네, 라고 생각하며 몸을 찬찬히 살피니 오른손도 그대로 있었다고 했다.

조금씩 눈을 올려보는데 팔이 너덜너덜하게 찢겨서 어깨에 붙어 있더라고 했다. 구두장이가 인생을 잃은 것이다. 입원 사흘째 되던 아침 "살아야겠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수백번 외치고 일어났다. "후유증이 있을 수 있으니 나머지 팔을 마저 잘라내자"는 의사 말에 몇 센티미터 남은 팔까지 잘라내고 퇴원했다. 열흘 만이었다.

의수를 만들러 간 의료보조기상 사장이 선언했다. "남은 팔이 너무 짧아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기능성 의수는 어렵겠다." 기가 막혔다. 왜 수술을 또 했나 했지만 그다음 말이 그를 사로잡았다. "성한 팔이 있으면 그 팔만 쓰려고 하니까 더 어렵다." 나는 왼팔이 있지 않은가. 오른팔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른팔만 없는 거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구두장이였다는 말이 나왔고 보조기상 사장이 툭 던졌다. "장애인 신발 한번 만들어 보시게." 새로운 인생 설계도가 그려졌다. 마음을 다시 잡고 처음 시작한 것이 젓가락질과 글씨 연습이었다. 밥상은 온통 반찬과 밥풀로 도배가 됐지만 그는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쉰다섯 사내가 밥상을 발로 차며 울었다. 그리고 커다랗게 네모칸이 그려진 연습장을 샀다. 거기 기역 니은 디귿을 쓰기 시작했다.

가죽 자르기도 다시 시작했다. 처남 집 차고에 연구소라고 간판 걸어놓고 기다렸지만 손님은 없었다. 칼로 가죽을 자르다가 허벅지를 쑤셔 가게를 피바다로 만든 적도 있었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을 쓰면 왜 살인도 면할 수 있는지 알았다. 그만큼 그 당시 고통을 참는 게 어려웠다." 이제는 쌈도 싸먹고 가죽 재단용 칼도 무소불위로 휘두를 줄 알게 된 그가 웃었다.

단골 가죽상도 팔 없는 구두장이에게 외상은 주지 않았다. 돈이 꾸역꾸역 들어갔다. 부인이 식당일을 하며 돈을 메웠다. 가게를 연 지 6개월이 지난 1996년 11월. 한쪽 다리가 8㎝ 짧은 40대 손님이 찾아왔다.

며칠 뒤 뒷굽 높여준 구두를 신고 간 사내가 다시 찾아왔다. "길이는 좋은데 발이 자꾸 앞으로 미끄러진다." 팔 없는 장인이 만든 구두를 신어줘서 고맙고, 자꾸 미끄러지는 구두를 신어준 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이후 남궁정부는 "남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날 때부터 소아마비였던 소녀, 그래서 결혼식 때 꼭 제대로 걸어서 웨딩마치를 하고 싶은 게 소원이었던 여자에게 구두를 맞춰줬다.

기형적으로 큰 발을 갖고 태어나 한 번도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는 사내에게 신발을 신겨주던, 그래서 그가 구두닦이에게 당당하게 "구두 닦아달라"고 발을 내밀게 해준 그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로 곤궁해졌을 때 단골들이 찾아와 십시일반으로 모은 3000만원짜리 통장을 내밀었다. "당신 없으면 우리가 걷지 못하니 꼭 돈을 벌어라"라고 막무가내로 통장을 내밀더라고 했다.

그 모든 게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 오직 한 켤레밖에 없는 신발들이었다. 자그마치 5만 켤레다. "지팡이 짚고 왔던 사람이 내가 만든 신발 신고 걸어나가는 걸 볼 때 행복하다. 그 마음, 내가 잘 안다. 팔이 없으니까. 아니, 오른팔 빼고는 다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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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9
201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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