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09년 12월 3일 "오른팔 없는 구두장이" 기부와 나눔은 돌고 돌죠"
관리자
3722
[사람과 이야기] 오른팔 없는 구두장이 "기부와 나눔은 돌고 돌죠"
[조선일보] 2009년 12월 03일(목) 오전 05:59 가 가| 이메일| 프린트
저는 오른팔이 없는 68살의 '구두장이' 남궁정부라고 합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세창정형제화연구소를 운영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구두를 만드는 곳이지요. 저는 얼마 전 '착한가게' 주인이 됐습니다. 매달 10만원씩 내기로 했습니다. 다른 곳에도 기부하지만, 또 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원래는 두 팔 모두 있었지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열두 살 때부터 구두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1970~1980년대 수제화가 한창 잘나갈 때는 돈도 좀 만졌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시들해지더군요. 속도 상하고 술도 좀 마셨습니다.

1995년 11월이었어요.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술에 취해 있는데 누군가에게 떠밀려 선로에 떨어졌고 전동차가 저를 덮쳤습니다. 그렇게 오른팔 전부를 잃었습니다. 더 이상 구두를 만들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의수(義手)를 맞추려고 한 의료보조기 매장에 갔는데 장애아동용 신발이 있었습니다. 안짱다리나 휜다리를 교정하는 신발인데, 신고 다니기 불편해 보였어요. 제가 '구두장이'라는 걸 알았던 가게 주인이 "이런 신발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1996년 가게를 내 장애인용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는 건 힘들었어요. 젓가락질도 새로 배우고, 글씨 쓰는 것도 'ㄱ', 'ㄴ'부터 다시 연습했어요. 구두 만드는 건 더 했죠. 한 손이 없으니까 허벅지 사이에 구두 형틀을 끼고 재단용 칼로 가죽을 자르고 본드로 붙였습니다. 고정이 잘 안 돼 칼로 허벅지를 찔러 피도 많이 봤습니다. 장갑을 끼면 손이 둔해져서 맨손으로 작업을 했는데, 항상 본드로 범벅이 됐어요. 한 손으로는 잘 씻을 수 없으니까 커다란 수세미에 휘발유를 뿌리고 한 손을 문댔습니다. 본드는 쉽게 떨어져 나갔지만, 손이 계속 트고 손톱과 살 사이가 벌어져 진물이 나고 계속 쓰렸지요.

그렇게 고생해서 구두를 만들었지만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팔 없는 장애인이 제대로 만들겠냐"는 거였죠. 사실, 그랬어요. 어느 날 다리 길이가 서로 다른 손님이 찾아와서 구두를 맞춰 갔는데 얼마 후 다시 돌아와서는 "굽 높이는 맞는데 신발 안에서 발바닥이 자꾸 미끄러져 불편하다"고 하는 겁니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재활의학과 의사들을 찾아가 관절과 근육에 대해 배웠습니다. 외국 의학서적을 구해 둘째아들(38)에게 번역해 달라고 한 뒤에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실험하면서 만들다 보니까 특허도 내게 되고, 손님이 하나 둘 늘고 단골도 생겼죠.

어느 날 한 장애인이 구두를 찾으러 왔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낼 만큼만 내고 가시라"고 했죠. 돈이 없어서 못 찾으러 오는 것 같으면 택배로 그냥 부쳐 줬습니다. 그런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는데, 이게 입소문이 났는지 기자도 찾아오고 신문과 방송에 나는 겁니다. 그게 또 알려져서 전국에서 구두를 맞추러 옵니다. 미국·일본·나이지리아에서도 손님이 옵니다. "장애인이 뭘 만들겠어"가 아니라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장애인이 만들어서 더 좋다"는 겁니다. 제 신발을 신고 걷게 된 초등학생이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제 신발 오래오래 만들어 주세요"라고 편지도 써서 보내고요. 신기하고도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2년에 한 번 열리는 장애인 합동결혼식에 신랑 신부를 위해 무료로 구두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1년에 1000만원씩 기부하고, 절단장애인협회에도 매달 30만원씩 보냅니다. 복지관 같은 곳에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사랑의밥차' 봉사에도 나가지요.

제가 도움만 주는 게 아닙니다. 장애인 신발은 공정이 까다롭다 보니 하루에 4~5켤레 만드는 게 고작이었어요. 사무실과 공장이 붙어 있어서 본드 냄새도 많이 났죠. 그래서 2004년 가게 옆 건물 2층에 구두공장을 따로 내고 싶은데 돈이 없었습니다. 제 고민을 알았던 단골 6분께서 어느 날 하얀 봉투를 내미셨어요. 열어봤더니 100만원짜리 수표 30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평생 신을 구두 값 먼저 내는 셈치고 함께 모았다"고 하시더군요. 건물 주인도 세를 깎아줬습니다. 그때 '기부와 나눔은 돌고 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해서 132㎡(40평)짜리 구두공장이 생겼고, 하루에 9~10켤레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저까지 장애인 5명을 포함해 16명이 신발을 만들고 있지요. 이제는 남자와 여자, 아기용 신발을 따로 만드는 기술자도 있고, 깔창 전문가도 생겼습니다. 이분들이 좀 더 기술을 쌓으면 훨씬 더 좋은 장애인용 신발을 만들 수 있겠죠.

저는 지팡이를 짚고 가게에 들어왔던 사람이 제가 만든 신발을 신고 두 발로 걸어서 나가는 걸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일반 신발과 비교하면 깔창 높이나 신발 속 디자인이 몇㎜ 차이가 안 나는 것도 있지만, 이런 작은 차이 때문에 목발에 의지하던 사람들이 두 발로 걷게 됩니다. 기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액수의 돈이라도 좌절해 쓰러져 있는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24일 서울 천호동 세창장애구두연구소 남궁정부 사장이 '착한가게'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정리=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09120305591166534&linkid=4&newssetid=1352




기사보기
이름 : 비밀번호 : 내용 :
2025.04.08
kbs1tv 아침마당 "화요초대석 구두장인 남궁정부"